• 관계의 반역: 데이터가 보여주는 관계의 배신

• 벼농사 vs. 밀농사: 수천 년의 농경이 조각한 마음의 지도

• 디지털 벼농사: 현대 사회가 비교를 부추기는 방식

• 비교의 소음을 끄고 행복을 되찾는 법

긍정 심리학계에는 수십 년간 흔들리지 않는 철칙이 하나 존재해 왔다.

"행복을 예측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통장 잔고가 아니라 친구 목록을 보라!"

에드 디너(Ed Diener)와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 같은 석학들이 수행한 '매우 행복한 사람들(Very Happy People)' 연구는 이 규칙을 지지하는 중요한 증거이다. 가장 행복한 상위 10%의 사람들에게서 발견된 유일하고도 공통된 특징은 바로 '깊고 지속적인 인간관계'였다. 고립된 천재보다 평범한 이웃과 어울리는 범인이 더 행복하다는 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진화론적 사실과도 부합해 보인다. 이 논리를 확장하면 우리는 꽤 그럴듯한 예측 하나에 도달하게 된다. "개인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서구 사회보다, '우리'라는 울타리를 중시하고 관계의 밀도가 높은 동아시아의 집합주의(Collectivism) 문화권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나 데이터를 펼치는 순간, 우리의 직관과 반하는 수많은 증거를 만나게 된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유교적 전통과 집합주의 문화를 공유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은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가진 서구 국가들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일관되게, 그리고 현저하게 낮다. 관계가 행복의 원천이라면서, 정작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가 오히려 더 불행하다니. 이 논리적 모순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관계'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진실의 실마리이다.

이 역설을 풀기 위해 사회학자 이철승과 심리학자 Thomas Talhelm, Xiawei Dong(2023)은 중국 양쯔강을 경계로 남북을 가르는 거대한 농업적 분단선에 주목했는데, 전통적으로 강의 남쪽에서는 벼(Rice)를, 북쪽에서는 밀(Wheat)을 주로 재배해 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주요 작물의 차이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른 방식으로 조각했다.

벼농사는 필연적으로 '강요된 협력'이 요구된다. 동아시아의 벼농사는 마른 땅이 아닌, 물이 가득 찬 논에서 벼를 키운다. 이를 위해서는 거대한 관개 수로를 건설하고 유지해야 한다. 내 논에 물을 대려면 윗집의 협조가 필요하고, 아랫집 논에 물을 빼주려면 이웃과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게다가 벼농사는 밀농사보다 약 두 배의 노동력을 요구한다. 모내기와 추수철의 살인적인 노동량을 감당하기 위해 벼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품앗이'라 불리는 노동 교환 시스템을 고안해냈다. 이 과정에서 벼농사 마을은 거대한 '상호 감시 시스템'으로 변화한다. 누가 제때 수로 공사에 나오는지, 누가 품앗이 때 요령을 피우는지 감시해야만 공동체가 유지되고 상호이익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곳에서 생존이란 "내가 누구인가"를 탐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이 촘촘한 관계망 속에서 나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그리고 남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 된다.

반면, 북쪽의 밀농사는 다른 상황에 직면한다. 밀이나 옥수수는 그저 빗물에 의존하므로 복잡한 수로 합의가 필요 없다. 파종과 수확 역시 가족 수준의 노동력으로 감당할 수 있다. 옆집이 밭을 갈든 말든 내 농사에 큰 지장이 없다. 이 환경적 차이는 수천 년에 걸쳐 벼 지역에는 '상호의존적 집합주의'를, 밀 지역에는 '독립적 개인주의'를 심어 놓았다.

이 이론이 단순히 그럴듯한 가설에 불과할까? 연구진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완벽에 가까운 자연 실험 조건을 찾아냈다. 중국 닝샤(Ningxia) 성에 위치한 두 개의 국영 농장인데, 두 농장은 불과 56km 떨어져 있어 기후, 방언, 경제 수준, 심지어 거주민의 출신 성분까지 거의 동일했다. 단 유일한 차이는 지리적 조건(물의 접근성) 때문에 중국 정부가 한 곳은 벼를, 다른 한 곳은 밀을 재배하도록 인위적으로 '지정'했다는 점이다.

연구진이 이 농부들을 인터뷰했을 때, 벼 농장의 농부들은 밀 농장의 농부들보다 사회적 비교 성향이 월등히 높았다. 그들은 "나는 남들보다 사회적 기술이 좋은가?", "내 수입은 이웃보다 나은가?"를 끊임없이 자문했다. 비교의 대상은 재산에 국한되지 않았다. 지능, 외모, 자녀의 성적, 심지어 도덕성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벼 농장 사람들은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춰보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교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예외 없이 행복도가 낮았다. 이 자연 실험 결과는 벼농사가 요구하는 촘촘한 관계망이 사람들을 서로 돕게 만드는 동시에, 서로의 삶을 끊임없이 곁눈질하고 평가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전국 규모의 대규모 설문 데이터 활용하여, 벼농사를 짓는 농부와 밀농사를 짓는 농부 사이에서 발견된 심리적 경향성의 차이가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는 일반인들에게서도 관찰되는지 확인하였다. 그 결과, 벼농사를 지었던 지역의 거주민보다 밀농사를 지었던 지역의 거주민들의 행복감이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전통적으로 벼농사를 지었던 지역에는 농업 사회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합주의적 문화가 남아 있었고, 이러한 문화적 양상이 개인들의 행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 연구진은 벼농사 문화권에서 '사회적 지위'가 행복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변수가 된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소득이나 직업적 위신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은 벼농사 지역이 밀농사 지역보다 약 두 배나 더 강력했다. 이는 벼농사 문화권에서는 남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질지에 따라 행복의 상당 부분이 결정됨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집합주의의 역설이다.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그 연결선은 '지지와 위로'를 보내는 통로가 아니라, '평가와 비교' 데이터를 전송하는 광케이블이 되었다.

우리를 둘러싼 이 구조는 행복을 제로섬 게임으로 만든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남보다 앞서야 하고, 남이 앞서면 나는 불행해진다. 요컨대, 상호이익을 위해 설계된 벼농사의 협력 문화가, 행복의 차원에서는 구성원 모두의 삶을 갉아먹는 상호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논에 물을 대지 않고, 아파트와 빌딩 숲에서 살지 않느냐" 반문할 수 있지만, 문화적 관성은 물리적 환경이 바뀐 뒤에도 오랫동안 생존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대의 기술 환경이 이 오래된 비교 본능을 위험한 수준으로 증폭시키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제 자작한 물에 잠긴 진흙 대신,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논밭에서 서로를 곁눈질한다. 부동산 앱은 우리 집과 옆 단지의 가격 차이를 붉은색 숫자로 실시간 중계한다. 직장인 커뮤니티는 연봉 서열과 직업의 귀천을 끊임없이 확인시켜 준다. SNS는 타인의 인생 중 순간에 불과한 하이라이트(여행, 오마카세, 명품)를 내 평범한 일상과 나란히 견준다. 과거 벼농사 시절의 비교가 마을 공동체라는 물리적 한계 내에서 이루어졌다면, 디지털 시대의 비교는 전역적이고 한계가 없다. 이 환경에서는 숫자로 환전 가능한 가치(연봉, 평수, 좋아요 수, 팔로워)만이 초점의 중심에 놓이고, 정작 행복의 본질인 관계의 질이나 내면의 평온, 소소한 즐거움은 해상도가 낮은 배경 화면처럼 희미해진다.

우리 뇌에 업로드된 집합주의적 '눈치 문화'라는 소프트웨어가 물질주의적인 '디지털 전시'라는 환경을 만났을 때, 관계는 행복이 아닌 족쇄가 된다.

우리는 전승된 농경 소프트웨어를 쉽게 바꿀 수도, 사회 전체의 구조를 하루아침에 뜯어고칠 수도 없다.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 이 거대한 비교 시스템의 간섭을 줄이고, 관계의 본질을 회복하는 전략적 선택은 가능하다. 관계가 불행이 아닌 행복의 자원이 되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 실천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비교의 좌표계를 '공간'에서 '시간'으로 전환하기이다. 우리의 뇌는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려 옆 사람을 본다. 이 공간적 비교는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대신 시선을 과거로 돌려 시간적 비교를 하면 승자와 패자의 프레임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작년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무엇이 나아졌는가?",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는 조금 더 지혜로워졌는가?"와 같이 과거와 현재의 나를 비교해 나가면, 행복의 기준을 타인이 아닌 나의 내면으로 되돌려 볼 수 있다.

둘째, 관계를 '성취의 전시장'에서 '안식처'로 재정의하기이다. 집합주의 사회에서 가족과 친구는 종종 내 성공을 확인하는 가늠자로 활용될 때가 있다. 실제로, "누구는 벌써 집을 샀다더라", "누구 자식은 어디에 들어갔다더라" 같은 말은 관계를 서열 가늠자로 전락시킨다. 이런 불행을 부르는 말 대신, 우리는 위로와 위안의 언어를 서로 나누어야 한다. "요즘 뭐가 제일 힘들어?", "최근에 뭐가 재밌었어?" 이러한 질문은 관계를 '평가의 재판장'에서 '서로의 쉼터'로 되돌려 놓는다. 서로의 안위를 물을 때, 비로소 관계는 비교를 멈추고 지지가 된다.

셋째, 사회비교로부터 자유로운 주변 환경을 설계하기이다. 비교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이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집에 과자를 두지 말아야 하듯, 비교를 멈추려면 비교를 유발하는 자극을 치워야 한다. 불행을 야기하는 SNS 계정을 언팔로우하고, 박탈감을 주는 부동산 커뮤니티나 단체 대화방 알림을 당장 비활성화시켜야 한다. SNS에 낭비하는 시간을 공동의 목표를 위해 땀 흘리는 운동 동호회나 봉사 활동처럼, 집합주의의 본래 장점인 '건강한 협력'을 경험할 수 있는 활동에 투자해야 한다.

벼농사 문화가 우리에게 남긴 문화적 유산은 '함께 사는 힘’이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놀라운 회복력과 결속력을 발휘하게 하는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함께' 안에는 언제나 '비교'라는 칼날이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행복은 피라미드의 정상에 있지 않다. 행복은 내가 사는 방식이 나의 내면과 얼마나 조화로운가에 달려 있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때, '나보다 앞서가는 경쟁자'나 '나보다 뒤처진 낙오자'가 아니라, '각자의 공간을 성실히 경작하는 동료'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벼농사의 유산인 '연대'는 살리되, '비교의 부작용'을 해독하는 것. 그것이 이 촘촘한 관계의 사회에서 우리가 진짜로 행복해지는 길일 것이다.

• Lee, C. S., Talhelm, T., & Dong, X. (2023). People in historically rice-farming areas are less happy and socially compare more than people in wheat-farming area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24(5), 935-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