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벽주의의 두 얼굴

• 완벽 추구의 역설

• 심리적으로 안전한 문화

• 완벽함이 아닌 탁월함을 향해

얼마 전 미국의 시사 잡지 『The Atlantic』에 이런 일화가 소개되었습니다(Shaw, 2025, November 2). 한 어머니가 딸의 대학 입학과 함께 캠퍼스 근처로 이사를 와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마다 딸을 강의실까지 데려다주는 것은 물론, 어느 날에는 아예 강의실 안에까지 들어가 옆자리에 앉으려 했고, 학교 측이 “학부모는 수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제지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 어머니는 복도에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몇 해 동안 반복했다고 합니다.

자녀의 대학 생활 곁에 거의 상시 대기하는 이러한 부모를, 기사에서는 ‘헬리콥터 부모’를 넘어서 아예 캠퍼스까지 따라온다는 의미에서 ‘트레일링 부모(trailing parents)’라고 지칭했습니다. 이러한 부모들은 지나치게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성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조금 다른 바람이 숨어 있습니다. 아이가 헤매지 않고, 민망한 실패나 좌절을 겪지 않고, 서툴러 보이지 않도록 돕고 싶은 마음. 말하자면 흠결 없는 대학 생활, 실패나 실수의 흔적이 남지 않는 완벽한 대학 생활을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이지요.

사실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시험에서 틀릴 만한 문제는 선행학습으로 미리 지워 버리고, 동아리, 대외활동, 봉사까지 안전한 코스로 설계해 주는 부모들이 우리 주위에도 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과제도 한 번 더 다듬어 보내고, 때로는 대신 해주기도 합니다. 아이가 어떤 의미있는 경험을 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의 생활기록부와 자소서가 얼마나 흠 없이 완벽해 보이는가입니다.

이렇게 자란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비슷한 삶을 반복합니다. 해낼 수 있을지 불확실한 일보다는 이미 잘하는 일에만 지원하고, 실수할 수 있는 무대는 피하고, 완벽하다고 느껴질 때만 사람들 앞에 섭니다. 그 결과, 이력서와 프로필에는 큰 실패 없이 매끈한 경력들이 쌓이고, 겉으로 보기에는 꽤 완벽하고 성공적인 삶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추구하는 흠결 없음, 실패 없음의 완벽함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이렇게 완벽을 추구하면 정말 우리가 바라는 삶에 가까워지는 걸까요? 아니면 우리는 그저 ‘실패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뿐일까요? 이 질문을 조금 더 들여다보기 위해, 심리학에서 말하는 ‘완벽주의’라는 렌즈를 빌려 보려 합니다.

우리는 완벽주의를 흔히 ‘높은 기준을 추구하는 태도’ 정도로 생각하지만,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완벽주의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다차원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마다 완벽주의를 구성하는 차원에 대한 견해는 다소 다르지만, 최근에는 완벽주의가 크게 두 가지 상위 차원으로 구분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바로 완벽주의적 추구(perfectionistic strivings)와 완벽주의적 염려(perfectionistic concerns)가 그것입니다(Osenk et al., 2020; Stoeber & Otto, 2006).

완벽주의적 추구는 매우 높은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향해 나아가려는 성향을 뜻합니다. 이는 결과를 향한 내재적 동기에 가깝고, 자신의 성과를 돌아보며 다음 목표를 세우게 하는 일종의 엔진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완벽주의적 추구는 성실성, 높은 학업 성취와 같은 긍정적인 결과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할 정도로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강박적으로 도달하고자 할 경우에는 불안, 우울, 일 중독, 사회적 기능 저하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고 합니다.

반면 완벽주의적 염려는 성격이 다소 다릅니다. 완벽주의적 염려의 중심에는 극단적인 자기 비판, 실수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완벽을 요구한다는 인식이 놓여 있습니다. 완벽주의적 염려 성향이 높은 사람은 사소한 실수도 크게 확대해서 생각하고 걱정하며, 자신이 완벽하게 잘 해내야만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좋아해 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벽주의적 추구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엔진이라면, 완벽주의적 염려는 사소한 삐걱거림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경보 시스템이자,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내면의 비평가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완벽주의적 염려는 신경증, 낮은 자존감, 불안, 우울, 자살 생각과 같은 심리적 고통은 물론, 학업 스트레스, 번아웃과도 일관되게 관련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염려가 단지 심리적 고통을 키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실패로부터 배우는 과정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완벽주의적 염려가 높은 사람들은 실패를 경험했을 때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큰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낍니다(Stoeber et al., 2008). 이들은 실패를 하나의 사건으로 바라보기보다, 실패로 인해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에 집중합니다. 실수나 실패가 ‘나라는 사람 전체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실패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일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때문에 완벽주의적 염려가 높은 사람들은 부정행위를 해서라도 실패를 숨기려 하고(Guo et al., 2024), 실패나 어려움을 타인에게 털어놓지 못한 채 관계 속에서 고립되기도 합니다(Kahn et al., 2021). 실패했을 때 겪게 될 감정적 고통과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서, 과제를 끝없이 미루거나 새로운 도전 자체를 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Yosopov et al., 2024).

결국 완벽주의적 염려는 우리 삶에서 실패를 지워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동시에 실패로부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 또한 빼앗아 가게 됩니다. 실패 제로의 완벽한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한 성장과 발전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이른바 완벽 추구의 역설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완벽주의적 염려에서 벗어나, 실패로부터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하버드대 경영대학 Amy Edmondson 교수는 그녀의 저서 『두려움 없는 조직(The Fearless Organization)』에서 그 답으로 심리적 안전(psychological safety)을 제시합니다. 심리적 안전은 조직 내에서 대인 관계의 위험을 감수해도 안전할 것이라는 구성원들의 공유된 믿음을 뜻합니다. 실수를 인정하거나, 어려운 질문을 하거나, 다수와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비난받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입을 닫는 대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심리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사람들은 실수를 숨기고, 잘못된 의사결정을 알고도 침묵하게 됩니다. 이러한 침묵은 성장의 기회를 차단할 뿐만 아니라, 때로 치명적 사고나 재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반대로 심리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는 실수나 오류를 빠르게 공유하고,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바꾸며, 새로운 시도를 보다 자유롭게 해내고, 이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틀리면 안 된다’는 문화와 ‘틀려도 말할 수 있다’는 문화는 똑같은 실패를 전혀 다른 결과로 이끌어 갑니다.

미국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Eli Lilly)는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삼는 문화를 가진 기업으로 자주 언급됩니다(Edmondson, 2011). 제약 산업에서 신약 후보 물질이 최종 승인을 받을 확률은 매우 낮고, 연구개발 과정에서의 실패는 일상에 가깝습니다. 릴리의 전 CEO인 Sidney Taurel은 “R&D에서 실패는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라고 말하며, 실패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회사 안에서는 중단된 연구 프로젝트를 기념하는 ‘실패 파티’ 자리를 마련해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하고, 무엇을 배웠는지 함께 정리하는 관행이 만들어졌고, 실패한 프로젝트의 데이터를 모아 ‘실패 포트폴리오(portfolio of failures)’와 ‘교훈 데이터베이스(lessons-learned database)’를 구축해 다른 연구자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리더들은 실패한 팀을 질책하기보다 “이번 실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습니까?”라고 묻는 방식으로, 실패를 학습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1년 설립된 KAIST 실패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실패 학회’와 ‘망한 과제 자랑대회’는 다양한 실패 사례를 공유하고, 어떻게 실패로부터 배울 것인가를 탐구하는 자리입니다. 2018년부터 시작된 행정안전부의 실패박람회 또한 국민들이 자신의 실패 경험을 자산으로 여기고 서로를 응원하며 재도전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행사입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실패를 개인에 대한 낙인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실패를 허용하고 공유하자는 말은 결코 기준을 낮추거나, 낮은 성과나 심각한 오류를 그냥 넘기자는 뜻이 아닙니다. 탁월함을 추구하되, 이를 완벽주의적 염려와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더 높은 목표를 향한 노력 자체가 아니라, 실패하는 순간 비난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입니다.

진정한 탁월함은 한 번도 실패를 경험하지 않음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데이터 삼아 또다른 새로운 시도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성취할 수 있습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탁월함을 추구하는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 실패를 함께 분석하고 되풀이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시스템, 그리고 실패 속에서도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마음의 토대와 같이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실패를 견딜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질 때, 비로소 높은 기준과 치열한 노력이 우리를 소진시키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실패 없음의 완벽함이 아닌, 실패를 통해 탁월함을 추구하는 당신의 모든 불완전한 시도를 응원합니다.

• Edmondson, A. C. (2011, April). Strategies for Learning from Failure. Harvard Business Review. https://hbr.org/2011/04/strategies-for-learning-from-failure 

• Edmondson, A. C. (2018). The fearless organization: creating psychological safety in the workplace for learning, innovation, and growth. Wiley.

• Guo, L., Mao, J.-Y., Mu, X., & Cai, Y. (2024). Can perfectionists be cheaters? The roles of fear of performance failure and supervisor bottom-line mentality. Journal of Business Ethics. Advance online publication. 

• Kahn, J. H., Woodrum, J. L., Marsh, E. M., Bopp, M. R., Taylor, D. A., & Cox, D. W. (2021). Perfectionism and the disclosure of distress.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168, Article 110337. 

• Osenk, I., Williamson, P., & Wade, T. D. (2020). Does perfectionism or pursuit of excellence contribute to successful learning? A meta-analytic review. Psychological Assessment, 32(10), 972–983.

• Shaw, R. (2025, November 2). When Helicopter Parents Touch Down—At College. The Atlantic. https://www.theatlantic.com/family/2025/11/trailing-helicopter-parent-kids-college/684768/

• Stoeber, J., Kempe, T., & Keogh, E. J. (2008). Facets of self-oriented and socially prescribed perfectionism and feelings of pride, shame, and guilt following success and failure.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44(7), 1506–1516. 

• Stoeber, J., & Otto, K. (2006). Positive Conceptions of Perfectionism: Approaches, Evidence, Challenge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 10(4), 295-319. 

• Yosopov, L., Saklofske, D. H., Smith, M. M., Flett, G. L., & Hewitt, P. L. (2024). Failure Sensitivity in Perfectionism and Procrastination: Fear of Failure and Overgeneralization of Failure as Mediators of Traits and Cognitions. Journal of Psychoeducational Assessment, 42(6), 705-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