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소식> 4호 - 불확실과 음모론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2024. 6. 13.

[오늘의 희소식]

음모론의 유혹: 삶을 이해하는 간단한 방식
잘못된 신념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음모론은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불확실과 음모론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 인사이트 더하기 - 고려대 최은수 교수

세상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인생이란 건 원래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입니다.

여기 평범한 회사원 A씨가 있습니다. 출근길에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간신히 제시간에 도착하자마자 지난 며칠간 야근해가며 작성한 보고서를 다시 제출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온종일 서류에 파묻혔다가 새벽에 돌아오는 길. 돈만 많으면 이런 직장 당장 때려치우는 건데, 하던 그의 눈에 ‘로또 판매’라는 문구가 들어옵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들어가서는, 숫자가 빼곡하게 적힌 종이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의 티켓을 받아듭니다.

하지만 토요일 저녁 휴대폰으로 번호를 확인하면 언제나 그렇듯 티켓의 가치는 증발합니다. 분노에 가득 차 휴대폰을 던져버리려던 그는 한 광고 문구를 보고 멈칫합니다. ‘충격, 로또 번호 조작? 로또 번호 패턴 확인하기’. 평소라면 무시했을 텐데, 그의 손가락은 어느새 광고로 향합니다.

어디엔가 분명 있을 법한 A씨. 과연 그는 로또에 당첨될 수 있을까요?

음모론의 유혹: 삶을 이해하는 간단한 방식

미래를 예지하는 초능력자가 아니라면 번호 예측은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당첨 번호를 안다면 번호를 알려주지 않고 직접 로또를 사겠죠. A씨가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직접 번호를 고르던 때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런 음모론을 믿는 걸까요?

음모론을 믿는 핵심적인 이유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통제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마음대로 되는 일만 있지는 않지요. 작게는 윗사람에게 혼나는 것부터 크게는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사회 구조의 문제까지, 그저 무력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일도 겪게 됩니다.

이해 불능의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해하고자 나름의 인과관계를 추론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것이 항상 옳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에서는 아무런 근거가 없더라도 ‘저 사람이 잘못해서 그렇다’라는 단순한 설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곤 하지요.

실제로, 사람들이 사회가 혼란하고 불평등과 차별이 크다고 느낄수록 음모론이 창궐한다고 합니다. 음모론은 흑백논리를 내세워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기 때문에, 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잘못을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가령 ‘운이 없어서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다’라는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말보다 ‘내 잘못이 아니라 추첨을 조작한 놈들 때문이다’라는 이야기가, 당첨되지 않아 절망한 사람들에겐 더 달콤하게 들리지요. 자신이 ‘우매한’ 대중과 달리 진실을 깨달은 특별한 존재라는 나르시시즘은 덤입니다.

즉, 음모론은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에서 제시되는 매력적인 해답으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나는 잘못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하면 된다는, 편리한 해결책이지요.

잘못된 신념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음모론을 한 번 믿기 시작하면 벗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음모론자들은 아주 작은 일을 확대해석해 근거로 내세우고 신봉하면서, 음모론을 부정하는 증거는 아무리 객관적이고 확실한 것이라도 진실을 가리기 위한 조작이라며 무시하는 확증편향을 보입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미개한 사람이나 권력자의 하수인으로, 진실을 음모론으로 몰아가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이지요.

사실,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이미 반박된 이야기를 자잘한 부분만 살짝 바꾸어 가져와서 억지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누군가 반박을 하면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어’라며 귀를 막아버립니다.

가령, 로또 조작 음모론자는 로또가 조작이 불가능한 구조인 걸 모르거나, 알더라도 관련자 전부가 매수되었다는 비현실적 주장으로 음모론을 합리화합니다. 이는 이들이 어리석어서라기보다, 확증편향이 만들어낸 자신만의 신념에 점점 깊이 빠져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알고리즘이 내가 좋아할 만한 정보들을 눈앞에 잔뜩 디밀어주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편리함은 음모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음모론을 지지하는 정보만을 노출해 확증편향을 부추기고,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다양한 음모론을 바이러스처럼 확산시키기도 합니다.

음모론은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거짓말을 통해 삶을 이해하는 행위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음모론을 믿으면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는 이야기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이런 거짓말 위에 쌓아 올린 만족감은 단기적이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음모론자 개인의 피해만이 아니라, ‘저 악인들을 처단해야 우리가 발전한다’라는 왜곡된 사회 인식이 갈등을 부추겨 사회의 안전성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음모론은 ‘저 사악한 권력자들’에게 대항하는 ‘선량한 우리들’이라는 구조를 만들어 (상대가 실제로는 그렇게 강한 권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도) 혐오와 폭력을 합리화하고, 더 나아가 이를 약자의 정당한 저항이라고 포장하게 됩니다.

불확실과 음모론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음모론이 사실로 드러나는 일도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대다수의 음모론이 허황된 이야기로 거짓 희망을 선사하고 사회를 황폐하게 할 수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반드시 거짓말이란 법은 없지요.

나만이 옳다는 폐쇄적인 태도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수용할 수 있는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이 필요합니다. 설령 상대방의 주장이 터무니없게 들리더라도, 왜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지, 왜 잘못되었는지 차근히 생각해 본다면 생각하지 못한 수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주장의 논리를 강화할 수도 있고, 어쩌면 내 주장의 오류를 찾아 보완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타인의 입장을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타인에게 무조건적 공감을 한다면 오히려 그들의 음모론에 휘둘리기 쉬워집니다. 열린 태도로 다양한 이야기를 듣되, 명확한 근거를 기반으로 판단하는 분석적 태도가 중요한 시점입니다.

💡 인사이트 더하기

오늘의 주제에 대해 희망연구소 최은수 교수님의 코멘트를 들어 봤어요.

사회심리학자의 통찰과 함께 오늘의 주제를 더 심도 있게 들여다볼까요?🔍

우리 사회에서 오늘의 주제를 왜 주목해야 하는지 심리학적 해설을 부탁드립니다.

👉🏼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불과 백 년 전, 20세기 초에 살던 사람이 평생 동안 접한 정보량을 단 하루 동안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요. 수많은 정보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있고 더 잘 통제한다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심지어 가짜 뉴스는 현대인의 불안과 혼란을 틈타 특히 취약한 이들을 기만하고 있어요. 음모론이라는 그럴 듯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왜 매력을 느끼는지, 그리고 어떠한 환경에서 더 취약해지는 지를 밝히는 것은 지금과 같은 거짓 정보의 홍수에서 중요한 과제입니다.

우리는 심리적으로 어떤 노력을 실천해볼 수 있을까요?

👉🏼 현대인은 과거에 비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어요. 게다가 바쁘기도 하죠. 이럴 때 우리는 손쉽게 정리되어 있는 삶의 설명서에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삶에는 행복과 성공의 공식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유혹적인 메세지들도 지척에 넘쳐납니다. 하지만 대개 그렇듯이, 삶의 여러 현상들은 명확한 인과 관계를 밝히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결국 페터 비에리가 말한 ‘자기 인식’라고 생각해요. 이 스위스 철학과 교수는 “비판적 물음을 통해서 익숙하던 생각의 패턴에서 한 발짝 거리를 두고 검증” (비에리, 2015) 하는 것이 바로 자기 인식의 방법론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면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허용한 외부의 목소리에 대항할 자기 목소리를 찾을 때, 우리는 여러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는 “존엄한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오늘의 희소식 주제는 고려대 문화사회성격심리 전공 박지훈 석사과정생이 작성하였습니다. 더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면 희망연구소 메일로 소통해 주세요! 👉🏼 ihr@sogang.ac.kr

📢 희망연구소 리포트

지난달 희망연구소에서는 어떤 이벤트가 있었을까요?

심리학 콜로퀴움 개최Ⅰ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조이수 교수)
심리학 콜로퀴움 개최 Ⅱ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대학원 박지영 교수)
<Habit Club: 50 Days> 좋은 습관 만들기 프로젝트 종료

리포트 자세히 보러가기

📫 나진경 소장과 함께 하는 <노래의 말들> 오디오클립

DJ김숲이 진행하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노래의 말들> 채널에서 희망연구소 소장인 나진경 교수가 함께 이야기해요. 사람들의 고민이 담긴 사연에 심리학적 해설을 한 스푼 더한 '플레이리스트 : 듣는 마음' 코너에 와보세요!

'플레이리스트 : 듣는 마음'은 매달 넷째 주 일요일 9시에 방송됩니다🤗 (6/23 방송)

👉🏼'플레이리스트 : 듣는 마음' 지난 방송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4406/clips/194

👉🏼<노래의 말들> 채널 구경가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4406

이번 방송의 주제는 '성장'입니다. 아래 버튼을 클릭해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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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Casara, B. G. S., Suitner, C., & Jetten, J. (2022). The impact of economic inequality on conspiracy beliefs.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98, 104245.
Douglas, K. M., Uscinski, J. E., Sutton, R. M., Cichocka, A., Nefes, T., Ang, C. S., & Deravi, F. (2019). Understanding conspiracy theories. Political Psychology, 40, 3-35.
Douglas, K. M., Sutton, R. M., & Cichocka, A. (2017). The psychology of conspiracy theories.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26(6), 538-542.
Kroke, A. M., & Ruthig, J. C. (2022). Conspiracy beliefs and the impact on health behaviors. Applied Psychology: Health and Well-Being, 14(1), 311-328.
Swami, V., Voracek, M., Stieger, S., Tran, U. S., & Furnham, A. (2014). Analytic thinking reduces belief in conspiracy theories. Cognition, 133(3), 572-585.
Van Prooijen, J. W., & Van Dijk, E. (2014). When consequence size predicts belief in conspiracy theories: The moderating role of perspective taking.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55, 6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