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언제 가짜 뉴스에 더 취약할까?

• 중심 경로와 주변 경로, 그리고 피곤하고 무관심한 현대인

지난 희소식에 이어 이번 희소식도 2024년의 겨울이 우리에게 던져준 충격적인 사건을 마주하고 숙고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개월여 전, 대한민국의 대통령 직무를 맡고 있던 윤석열이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습니다. 비록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50분 만에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안을 가결시켰고 그 후 네 시간 정도가 지난 후 윤대통령이 드디어 해제 발표를 하여 일단락되었지만, 그 날의 충격과 공포의 후폭풍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특히 이후 윤대통령 측에서 비상계엄 선포 배경 중 하나로 꼽았던 “부정선거론”이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또 다른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 가능성이 비상계엄의 선포 조건(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헌법 제77조)으로 부적합하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음모론이라고 분류해도 무리가 없을 부정선거론이 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권력집단과 시민들이 신봉하고 있다는 사실, 혹은 적어도 신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거짓 정보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가를 확인시켜 줍니다.

가짜 뉴스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빨라진 정보의 전파 속도로 인하여 그 폐해가 이토록 광범위하고 깊었던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한 국가의 역사를 반세기 퇴보시킬 수 있는 비상계엄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가짜 뉴스의 치명적인 영향력을 대한민국의 현시점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까이서 목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은 아닙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현 엑스)와 같은 소셜미디어를 전세계에 전파한 미국에서는 일찌감치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부정선거론을 앞세워 국회를 무력 공격한 사건이 있습니다. 지난 달, 1월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을 무단 침입하여 폭동을 일으킨 한국의 극우세력과 데칼코마니 같은 모습입니다. 실제로 한국의 극우 집회에서는 2020년 미국 국회를 침입한 폭도들의 캐치 프레이즈인 “Stop the Steal”이 적혀진 푯말이 가득합니다. 마치 한국의 부정선거론자들이 미국의 부정선거론자들의 카피캣처럼 보이는 대목입니다.

페티와 카치오포라는 사회심리학자들의 정교화 가능성 모델(elaboration likelihood model)에 따르면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정보를 처리합니다. 그 중 첫 번째는 중심 경로로, 해당 사안이 자신의 삶에 관련이 아주 크거나 해당 영역에 대한 지식 수준이 높을 때 거치는 경로입니다.  중심 경로로 정보를 처리하는 경우에 사람들은 메시지의 질(quality)에 민감합니다. 근거가 탄탄하고 논리적인 메시지는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변 경로로 정보를 처리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메시지의 질과는 무관한, 그러나 얼핏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는 요인들에 혹합니다. 가령, 화자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좋은 대학을 나왔는지, 권위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메시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와 같은 요인들입니다. 가짜 뉴스는 바로 이런 주변 경로로 정보를 처리할 때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보의 근거가 얼마나 합당한지, 상식에 맞는지, 배후에 어떠한 이익 집단이 있는지,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지는 않은지 등, 논리적이고 종합적인 인지적인 노력을 들이지 않을 때 우리는 가짜 뉴스에 취약해집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 주변 경로를 거쳐 정보를 처리할까요? 중심 경로 때와 달리 해당 사안이 자신의 삶에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해당 영역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을 때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치고 피곤할 때, 즉 메시지의 질을 따지는 데 인지적인 노력을 기울이려는 동기나 능력이 떨어져 있을 때 사람들은 주변 경로로 정보를 처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짜 뉴스에 노출되어 있고 이로부터 영향을 받기 일쑤입니다. 쏟아지는 정보를 켜켜이 훑기에 우리는 바쁘고 피곤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주체들, 가령 미디어와 같이 정보를 배포할 수 있는 플랫폼이나 스피커가 큰 유명 정치인들처럼 권력이 있는 기관은 어렵지 않게 사람들을 기망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가 사람들의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는 늦은 저녁 시간에 연설하기를 선호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미디어의 소비자인 각 개인들은 자신의 취약성을 인지하고 섣불리 정보의 진위를 판단하고 이를 맹신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을 개인이 지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정당하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개인이 좋은 정보를 구별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만큼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언론계 종사자와 관련자들, 그리고 이를 규제하는 정치권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개인으로서는 구조를 탓하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만은 없는 일일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 어떠한 상황에서, 무슨 과정을 거쳐 거짓 정보의 덫에 걸리는가에 대한 이해는 개인이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가 아닐까요?

• Vosoughi, S., Roy, D., & Aral, S. (2018). The spread of true and false news online.  Science ,  359 (6380), 1146-1151.

• Petty, R. E., Cacioppo, J. T. (1986).  The elaboration likelihood model of persuasion  (pp. 1-24). Springer New York.